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. (가) 어져 어져 저기 가는 저 사람아 네 행색을 보아 하니 군사 도망 네로구나 허리 위로 볼작시면 베적삼이 깃만 남고 허리 아래 굽어보니 헌 잠방이 노닥노닥 곱장 할미 앞에 가고 전태발이 뒤에 간다 십 리 길을 하루 가니 몇 리 가서 엎어지리 내 고을의 양반 사람 타도 타관 옮겨 살면 천히 되기 상사여든 본토 군정(軍丁) 싫다 하고 자네 또한 도망하면 일국 일토(一土) 한 인심에 근본 숨겨 살려 한들 어데 간들 면할쏜가 차라리 네 살던 곳에 아무렇게나 뿌리박혀 칠팔월에 ㉠ 인삼 캐고 구시월에 돈피* 잡아 공채 신역 갚은 후에 그 나머지 두었다가 함흥 북청 홍원 장사 돌아들어 잠매할 때 후한 값에 팔아 내어 살기 좋은 넓은 곳에 가사 전토(家舍田土) 다시 사고 살림살이 장만하여 부모처자 보전하고 새 즐거움 누리려무나 어와 생원인지 초관인지 그대 말씀 그만두고 이내 말씀 들어 보소 이 내 또한 갑민(甲民) * 이라 이 땅에서 생장하니 이때 일을 모를쏘냐 우리 조상 남쪽 양반 진사 급제 계속하여 금장 옥패 빗기 차고 시종신을 다니다가 시기인의 참소 입어 변방으로 쫓겨 와서 국내 변방 이 땅에서 칠팔 대를 살아오니 조상 덕에 하는 일이 읍중 구실 첫째로다 들어가면 좌수 별감 나가서는 풍헌 감관 유사 장의 채지 나면 체면 보아 사양터니 애슬프다 내 시절에 원수인의 모해로써 군사 강정 되단 말가 내 한 몸이 헐어 나니 좌우전후 수다 일가 차차 충군(充軍) 되것고야 조상 제사 이내 몸은 하릴없이 매여 있고 시름없는 친족들은 자취 없이 도망하고 여러 사람 모든 신역 내 한 몸에 모두 무니 한 몸 신역 삼 냥 오 전 돈피 두 장 의법이라 열두 사람 없는 구실 합쳐 보면 사십육 냥 해마다 맡아 무니 석숭* 인들 당할쏘냐 - 작자 미상, 갑민가 - * 돈피 : 담비 가죽. * 갑민 : 갑산의 백성. * 석숭 : 중국 진나라 때의 부자.(나) 녹양방초 언덕에 소 먹이는 아희들아 앞내 ㉡ 고기 뒷내 고기를 다 몽땅 잡아내 다래끼* 에 넣어 주거든 네 소 궁둥이에 얹어다가 주렴 우리도 서주(西疇) * 에 일이 많아 바삐 가는 길이매 가 전할동 말동 하여라 - 작자 미상, 사설시조 - * 다래끼 : 물고기나 작은 물건 등을 넣는 바구니. * 서주 : 서쪽 밭.
- <보기>를 참고하여 (가), (나)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? [3점] <보 기> 조선 후기의 가사나 사설시조에서는 입장이 다른 발화자가 등장하는 대화체를 사용해 작중 상황을 극의 한 장면처럼 만들기도 한다. 대화를 통해 사실성을 추구하는 작품의 경우, 구체적 소재와 다각적인 내용으로 그 시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. 대화를 통해 유희성을 보이는 작품의 경우, 대화가 논쟁, 의견 불일치 등 의외의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재미가 생겨나며, 때로 등장하는 불완전한 표현은 이러한 작품이 내용 자체보다 대화의 전개 양상에 주목함을 보여 준다.
① (가)의 ‘그대’가 ‘자네’의 선택과 다른 권유를 함으로써 ‘자네’가 풀어낸 사연은, 당시 갑산 백성이 겪었음 직한 고통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는군. ② (가)의 ‘이내’ 말씀은 집안의 내력과 사회적 지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자는 입장으로, ‘그대’ 말씀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군. ③ (나)는 선행하는 화자의 요청에 대해 ‘우리’가 선행하는 화자의 기대에 어긋난 대답을 하면서 대화가 의외의 상황으로 펼쳐 지는군. ④ (나)의 선행하는 화자가 ‘고기’를 누구에게 주라고 하는지 명시하지 않아 불완전한 표현이 된 것은 이 작품이 내용보다 대화의 전개 양상에 주목한다는 것을 드러내는군. ⑤ (가)의 ‘그대’는 길 가는 ‘자네’를, (나)의 선행하는 화자는 소 먹이는 ‘아희들’을 불러 말을 건네고 있어 작품의 상황이 극 중 장면처럼 보이는군.
[THOUGHT]
- (가)에서는 길 가는 ‘자네(군사 도망자)’에게 ‘그대(생원/초관으로 지칭되는 화자)’가 먼저 권유하고, 이에 대해 ‘이내(갑민)’가 자신의 처지와 억울함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며 당시 갑산 백성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. ⇒ ①, ⑤ 적절.
- (가)의 ‘이내’는 가문의 내력과 자신에게 집중된 신역 부담을 말하며 부조리의 ‘해결’을 주장하기보다는 억울한 현실을 하소연하고 있다. 또한 ‘그대’의 권유와는 현실 인식이 어긋나긴 하지만, 이를 “사회 부조리를 해결하자”는 입장으로 보긴 어렵다. ⇒ ②가 부적절.
- (나)는 부탁(요청)에 대해 상대가 “우리도 바쁘니 가 전할동 말동”처럼 기대를 비트는 응답을 하여 대화가 의외로 전개되는 유희성이 나타난다. ⇒ ③ 적절.
- (나)의 ‘주렴’처럼 목적어가 명시되지 않은 표현은 대화의 전개/말맛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. ⇒ ④는 감상으로 수용 가능.
따라서 적절하지 않은 것은 \boxed{②} 입니다.